(스포일러 있음.)
1. "월 29800원으로 슬픔에 대비하십시오"
다들 아시겠지만 요즘 화제가 된 TV광고 카피입니다. 드디어 천국이 지상에 도래한 것 일까요. 월 29800원이면 친지의 죽음도, 슬픔도, 무거운 마음도 훌훌 털어버릴 수 있다고 합니다. 가입 즉시 상을 당해도 100% 편의를 돌보아 준다고 합니다. 갑자기 큰일 생기면 정신 없으실 거라고 따스하게 걱정도 해 줍니다. 자 슬슬 입질이 옵니다. 사람 인생 알 수 있습니까? 그저 닥치고 29800원이면 모든 고통과 슬픔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2.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는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필요를 앗아 가고, 그 자리에 불안과 공포를 심어줍니다. 29800원이라는 저렴한 비용을 내세우는 상조회사 광고는 우리에게 강조합니다. "친지가 죽으면 슬프다"가 아니라 "친지가 죽으면 목돈이 깨진다"고. "친지의 죽음에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라. 그것은 마음을 나눈 사람이 아니면 안된다"가 아니라 "이 자본주의로 파편화된 사회에서 친지가 죽었을 때 너를 도와줄 것이라고는 돈(으로 살 수 있는 전문적인 장례서비스)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요. 당신은 그렇다고 생각합니까?
3.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마이클 무어는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부터 <식코>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자본주의에서 공포의 확산과 권력의 유지'라는 관계를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알려왔습니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경제 교과서에야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고 했지만, 왠걸. 그 수요는 공포에서 또 다시 창출된다는 것 입니다. 아, 그런데 그 공포라는 것은 어디서 창출 되는 것 일까요. 그렇습니다. 마이클 무어에 따르면, 공포는 공급(하는)자 - 자본 - 이 창출한다고 합니다. 공급에 의한 공급의 실현. 아름답지 않습니까. 천국이 지상에 도래했습니다. 수요-공급의 페어는 사라지고, 새로 시작된 공급-공급의 시대가 왔습니다. 공급자는 이전보다 더 크고 새로운 공포를 만들어야 합니다. 공포에는 면역성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결국 '과잉 공포에 따른 과잉 불안의 시대'에 살게 되는 겁니다. 어차피 사람들은, 모두들 불안해 합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불안해 하면, 경제가 돌아가는데, 우리에게 행복할 필요가 있을까요. 네, 우리는 행복하면 안됩니다. 불행하고 불안해야 합니다.
4. <해피 고 럭키>의 주인공 포피(라고 불리길 원하는, 본명은 폴린)는 이러한 '과잉 불안'시대의 열등반 학생입니다. 그녀는 불안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습니다. 초등학교 교사인 그녀는, 자유롭고, 낙천적이며, 노력하고, 열심히 살며, 즐길 줄 알고, 공감할 줄 알며, 동정할 줄도 알고, 이해할 줄도 압니다. 결정적으로 그녀는 사람들이 행복을 도처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길 바라기도 하고요. 열등하기도 이렇게 열등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이런 그녀뿐인 세상이라면, 정말, 경제 발전이 가능하겠습니까. 모두들 행복하기만 하지 않겠습니까. 젠장.
5. 영화는 특정한 줄거리 없이 포피의 일상을 그려 보입니다. 자전거를 도둑 맞는 포피, 클럽에서 춤을 추는 포피, 학교에서 일하는 포피, 플라멩고를 배우는 포피, 트렘폴린을 하는 포피. 그녀는 행복하고, 타인에게 행복을 전합니다. 그렇다고 영화가 두 시간동안 온통 그런 행복한 일상으로 가득 찬 것은 아닙니다. 영화에서 갈등 관계는 존재 합니다. 결혼해서 출산이 얼마 남지 않은 여동생과의 갈등, 운전 교습 강사와의 갈등이 그것입니다. 여동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인생은 모르는 거야. 제발 철 좀 들어" 운전 교습 강사도 이렇게 말합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인생은 모르는 거야. 제발 철 좀 들어. 그리고 나만 바라봐(?)"라고 말이죠.
하지만 포피는 그런 갈등을 잘 이겨 냅니다. 이는 그녀가 지혜롭고 위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가 철이 없어 보이기는 하겠지요. 하지만 사람이 행복하려고 사는거 아닐까요. 재미있게 지내요. 즐겁게 살아요. 괜찮아요, 문제는 없을 거에요"라고 말합니다.
6. 중요한 것은 불안과 공포가 아니라고, 행복이라고, 그냥 행복이라고 영화는 내내 말합니다. 쉬는 날에 친구들과 클럽에 가고 술을 마시면 되고, 일상에서는 열심히 진심으로 일하면 되고, 트렘폴린을 하거나 플라멩고를 배우면. 그러면 행복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29800원이라고요? 저는 이 영화를 스폰지하우스에서 7000원을 주고 봤습니다. 덕분에 행복합니다. 이보세요, 보람상조. 내가 왜 매달 삼만원 씩이 이체되는 돈을 보면서 친지의 죽음을 기다려야 합니까. 됐어요. 그냥 영화나 보세요. <해피 고 럭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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