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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륭에 미안하다. 나는 천민이다.

 
이제 분신밖에 남지 않았다고 조롱하는 사회(오마이뉴스 20081023)

작년 5월 쯤, 한 시사 잡지에 실린 기사를 보고 기륭사태에 대해 알게 됐다. 학습의 결과인지, 계급적 자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난 그곳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지 않았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가 있던 날, 나는 4번을 찍고 집에서 낮잠을 잤다.

귀찮았다. 바쁘다고 생각했다. 기륭보다 중요한 일이 많다고 생각했다. 학교도 다녀야 되고, 공부도 해야되고, 기사도 써야 했다. 그런 핑계들을 둘러댔다. 어느날 집에 와서 저녁을 먹는데 어머니가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재봉일을 하시는 어머니는 공장에 출근해 자리에 않아서 딱 세 번 일어난다. 오전에 화장실 갈 때 한 번, 점심 먹을 때 한 번, 오후에 화장실 갈 때 한 번. 그런데 어느날은 오후에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는데 반장이 눈치를 주더란다. 결국 그 다음 날에는 일어나는 횟수를 두 번으로 줄이셨다. 얼마 후 어머니는 대장에 병이 생겨 수술을 받았다. 나는 분개해서 어머니께 그 회사 때려치고 노동부에 고발하라고 했다. 어머니는 웃으셨다. 화장실 가는 것 때문에 회사를 고발하는 건 우습지 않니.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어 있었다. TV에서는 이명박 당선자가 자동차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하는 것을 생중계했다. 자동차 뒤로 수많은 경호 병력들이 붙었다. 딱 그만큼의 중계차량도 붙었다. 하늘에는 헬기로 공중 촬영을 했다. 어머니는 그 날 그 시간까지 회사에서 일을 하셨다.

기륭의 소식은 끊임없이 들려왔다. 단식을 한다더라. 누가 병원에 실려갔다더라. 그 순간에도 난 알고 있었다. 나는 기륭에 가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가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도 잡아야 하고 토익 공부도 해야 한다. 어학연수도 가야 하지 않을까. 어머니는 점점 살이 찌고 계셨다. 소파에 앉기만 하면 졸았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지 못하셨다. 그놈의 졸음이 문제다. 나는 어머니께 화를 냈다. 엄마 왜 설거지 안해. 냄새나잖아. 밥 먹고 바로바로 해야지. 어머니는 웃으셨다. 내가 늙었나봐 요즘 자꾸 잠이 와. 얼마 후 있었던 국회의원 선거에서 난 민주당을 찍었고, 그날은 낮잠도 자지 않았는데 전국은 한나라당의 푸른 물결로 도배됐다.

7월에 휴학을 했다. 그리고 한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어느 날, 포스팅을 통해 기륭 동조 단식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난 이해할 수 없었다. 투쟁하는 것도 좋고, 다 좋은데. 왜 밥을 굶어가면서 하나. 밥을 먹어야 사는데.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심정은 알겠지만 사람이 밥을 먹어야지. 수십일째 단식 투쟁이라니. 그게 육체적으로 가능한가. 힘만 빠지지. 난 줄곧 어려워 지는 경제를 보며 아버지께 라면이라도 몇 박스 사다 놔야 겠다고 말씀드렸다. 며칠 후 아버지께서는 신라면 두 박스를 정말로 사 오셨다.

며칠 전. 기륭에 용역 깡패와 전경들이 투입돼 현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누군가는 팔이 부러졌다. 그제서야 알게 됐다. 나는 천민이구나. 천민이 다른게 아니구나. 알면서 행하지 않음이 바로 천민이구나.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한 나는 천민이구나. 기륭에 가지 않는 나는 천민이구나.

이제 알았다. 나는 기륭에 가야 한다. 일이 끝나면 나는 기륭으로 가야 한다. 오래는 못 있어도 얼굴이라도 비추고 응원이라도 해야 한다. 천민은 고결한 자들을 본받아야 한다. 그래야 천민의 굴레를 벗는다. 나는 오늘 기륭에 간다.


+ 퇴근 3분 전. 이제 갑니다.

+ 다녀 왔습니다. 후기는 곧 쓰겠습니다.

by 공류 | 2008/10/23 13:43 | 안드로메다로(뉴스) | 트랙백(1) | 핑백(1)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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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늙돌이의 소잡기 at 2008/10/23 15:08

제목 : 행동한다는 것
기륭에 미안하다. 나는 천민이다.요즘 주변에서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뉴스 더이상 관심 끊었다/안본다" 이다.벌어지고 있는 작태가, 시국이, 경제 상황이 사람들을 타조로 만들고 있다.위정자 들은 위의 현상을 보며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러고 있으리라...머리로 알지만 마음에 남기지 않고 마음에 새기지만 행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달라질 것이 뭐가 있을까 ...'이래봐야 달라질 것 하나 없어 나쁜 XX들' 하는 자괴......more

Linked at Commonflow : 부끄러.. at 2008/11/18 09:24

... 근 한달이나 지났습니다. 기륭에 다녀온 것은. 10월 23일에 다녀와서 후기(기륭에 미안하다. 나는 천민이다.)를 쓰겠다고 해놓고는, 에 오늘이 11월 18일이니까, 정말 근 한달이나 되네요. (덧글을 달아주신 4분과, 트랙백까지 걸어주신 1분께, 그리고 혹시 ... more

Commented by laystall at 2008/10/23 14:43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공류 at 2008/10/23 14:48
생각나는 대로 쓴 잡문인데, 잘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늙돌이 at 2008/10/23 15:0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머리로 분노하지만 가슴에 남겨 두지 않고 가슴에 남겨 두지만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가 점점 강아지 판이 되어 가고 있다는 반성을 요즘 자주 합니다.
Commented by 공류 at 2008/10/23 15:07
감사합니다. 제가 가서 뭘 할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가야겠지요.
강아지 판이라니, 대인배이십니다 :)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8/10/23 17:39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공류 at 2008/10/23 17:57
감사합니다. 부끄럽습니다.
Commented by 思惟 at 2008/10/23 18:16
같이 행동하는 분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Commented by 공류 at 2008/10/23 23:20
방금 다녀왔습니다. 역시, 부끄러웠습니다.
Commented by 아이 at 2008/12/05 15:08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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