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18일
부끄러움, 미안함, 그리고 더러울 나
근 한달이나 지났습니다. 기륭에 다녀온 것은. 10월 23일에 다녀와서 후기(기륭에 미안하다. 나는 천민이다.)를 쓰겠다고 해놓고는, 에 오늘이 11월 18일이니까, 정말 근 한달이나 되네요. (덧글을 달아주신 4분과, 트랙백까지 걸어주신 1분께, 그리고 혹시라도 이 후기를 기다리고 계셨을 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 날은 지지리도 비가 많이 오는 날 이었습니다. 일이 끝나고 구로로 가니 가을비가 억수로 쏟아졌습니다. 참,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비가 그렇게도 많이 내릴수가 없었습니다. 수중에 돈은 만 원 가량, 뭐라도 드려야 겠다는 생각에 귤 4000원어치 한 봉지를 사서 기륭전자로 가는 마을 버스에 타니 그것이 한 7시 반 쯤(가물가물, 더 이전인 것 같기도 합니다. 촛불문화제가 7시 반에 시간하하는데 그건 처음부터 했고). 그래도 마음은 가벼웠습니다.
기륭에 도착하니 스물이 안되는 분들이 농성을 하고 계셨습니다. 조합원 분들이 쉬고 계시는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귤 봉지를 내밀려니,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귤 4000원 어치라니. 40만원도 아니고, 4만원도 아니고, 4천원어치 귤. 전 어찌할 바를 몰라 후다닥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래도 어쩌겠냐, 내가 가진 건 이 뿐이고, 귤 오천원 어치 사면 지하철을 한번 못탈 것이라는, 그런 소심하고 소심한 마음에 귤을 오천원어치 못샀고. 왜 귤을 짝수로 끊어 왔냐는 비난이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러다가, 뻘줌하고 멍청하게 서 있다가, 그냥 촛불문화제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도착하니 빗발은 약해지고, 그 자리를 노래가 채웠습니다. '처절한 기타맨'이라는 분의 처절한 노래들 (노랫말은 참 재밌었다만 참 처절했던, '딸기가 좋아' '명박이가 싫어'라는 가사는 여전히 기억 나는, 작고 부드럽고 처절한 목소리), '노래공장'(이것도 기억이 가물가물, 여성 보컬분이 홀로 민망해하던 제게 말을 붙여주신, 고마운)이라는 2인조 분들의 노래를, 그리고 기타를 빌려주신 분(?)의 노래, 그리고 노래, 노래, 노래. 그날 기륭 촛불문화제는 노래로 기억됩니다. 간간히 들려오는 소식들. 사다리에서 떨어진 분과, 사다리에서 떨어지게 한 분과, 웃음과, 다음날 큰 집회(대학로에서 열리는 것)이 있다는 소식. 그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혼자에 소심해서, 저는 노래도 따라부르지 못하고 그저 박수만 칠 뿐이었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정말 이 분들에게 힘이 되는 것일까. 그저 앉아만 있고, 혹시나 피해가 되는 건 아닐까. 흥을 깨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말입니다.
아홉시 반 쯤, 촛불 문화제가 끝나고 케익을 자를때(아마 어떤 분의 생일이 었습니다),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아, 뭐하러 그 자리에 두시간이나 앉아 있었나. 귤이나 전해드리고 그냥 갈 걸. 이럴거면 차라리 안오는게 나았을지도. 아아 민망해라 민망해. 피해는 안줬겠지만, 조합원 분들은 '쟤는 뭐니'라고 생각했을거야. 아니, 어쩌면 피해를 줬을지도. 구로로 가는 마을버스에서, 그리고 돌아가는 길의 지하철에서 소심한 나를 탓하며, 그렇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후기를 쓰려고 하니. 참. 정말 단 한 단어도 써내려지지 않았습니다. 아씨, 왜 그러냐, 그냥 쓰면 된다고. 넌 귤 한 봉지 사서 거기 갔고, 뻘줌하게 앉아 있었고, 도망치듯 나왔다고 그냥 쓰면 된다고. 학교 레포트는 술마시고도 쓰면서(결과는 물론 좋지 않지만) 맨 정신에 그걸 못쓰는거냐. 그냥 써. 그런데, 네가 뭘 했다고 쓰냐. 거긴 수십일 동안 천막에서 출퇴근 하시며 농성하시는 분들도 있고, 하루에서 수번씩 마음졸이며 투쟁하시는 조합원 분들도 있다고. 넌 근데 뭘했어. 귤 한봉다리. 하하. 차라리 안가니만 못했던거잖아. 네가 한 건 참여가 아니라 참가, 참가도 아니고 참석, 참석도 아니고 뭣도 아냐.
결국 단 한 줄도 후기를 쓰지 못하고서는 몇일 간 그저 소위 '멍때리고' 있었습니다. 밸리에 글을 올려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게 뭐야. 고작 귤 한 봉다리 주제에 말야"라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습니다. 그곳에 가서 부끄러움을 덜고 싶었지만, 부끄러움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그러다가, 후기가 다 뭐야. 그냥 잠이나 자자며 있었죠.
그러다 김현진 님의 '최상의 연대는 입금이다'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그래, 맞아, 나같이 현장가서 뻘줌하게 서 있는 것 보다야 입금이 낫지. 암 그럼. 그럼 입금을 해볼까, 지금 돈이....없구나. 아, 나는 돈이 없구나. 그래, 그 귀족신분인 '학생'이라서 난 돈이 없구나. 일해서 번 돈 어디로 갔는지 다들 이체되고 남은 돈은 없구나. 놀러다닐 돈은 있고, 입금할 돈은 없는 거였구나. 가진게 몸뚱아리 밖에 없는 나는, 몸으로 부딫혀야 되는데, 그건 싫고, 돈은 없고. 난 무자격자인가. 연대할 자격은 없구나.
지금까지 그런 날들이었습니다. 아직도 용기가 없습니다. 돈도 없습니다. 난 패배자인 것 같습니다. 마음속으로 그 분들이 모두 승리하시기를 바라는 것 밖에 없는 사람이 됐습니다. 그저 블로그에 글질이나 하는 '입글루저'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것 밖에 할 일이 없네요. 그래도 용기를 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남은 것이 입 뿐인 까닭입니다.
부끄럽고, 미안하고 더러울 나 입니다.
(뉴스밸리에 올릴 성격의 글은 아니지만, 그래도 올립니다)
그 날은 지지리도 비가 많이 오는 날 이었습니다. 일이 끝나고 구로로 가니 가을비가 억수로 쏟아졌습니다. 참,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비가 그렇게도 많이 내릴수가 없었습니다. 수중에 돈은 만 원 가량, 뭐라도 드려야 겠다는 생각에 귤 4000원어치 한 봉지를 사서 기륭전자로 가는 마을 버스에 타니 그것이 한 7시 반 쯤(가물가물, 더 이전인 것 같기도 합니다. 촛불문화제가 7시 반에 시간하하는데 그건 처음부터 했고). 그래도 마음은 가벼웠습니다.
기륭에 도착하니 스물이 안되는 분들이 농성을 하고 계셨습니다. 조합원 분들이 쉬고 계시는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귤 봉지를 내밀려니,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귤 4000원 어치라니. 40만원도 아니고, 4만원도 아니고, 4천원어치 귤. 전 어찌할 바를 몰라 후다닥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래도 어쩌겠냐, 내가 가진 건 이 뿐이고, 귤 오천원 어치 사면 지하철을 한번 못탈 것이라는, 그런 소심하고 소심한 마음에 귤을 오천원어치 못샀고. 왜 귤을 짝수로 끊어 왔냐는 비난이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러다가, 뻘줌하고 멍청하게 서 있다가, 그냥 촛불문화제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도착하니 빗발은 약해지고, 그 자리를 노래가 채웠습니다. '처절한 기타맨'이라는 분의 처절한 노래들 (노랫말은 참 재밌었다만 참 처절했던, '딸기가 좋아' '명박이가 싫어'라는 가사는 여전히 기억 나는, 작고 부드럽고 처절한 목소리), '노래공장'(이것도 기억이 가물가물, 여성 보컬분이 홀로 민망해하던 제게 말을 붙여주신, 고마운)이라는 2인조 분들의 노래를, 그리고 기타를 빌려주신 분(?)의 노래, 그리고 노래, 노래, 노래. 그날 기륭 촛불문화제는 노래로 기억됩니다. 간간히 들려오는 소식들. 사다리에서 떨어진 분과, 사다리에서 떨어지게 한 분과, 웃음과, 다음날 큰 집회(대학로에서 열리는 것)이 있다는 소식. 그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혼자에 소심해서, 저는 노래도 따라부르지 못하고 그저 박수만 칠 뿐이었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정말 이 분들에게 힘이 되는 것일까. 그저 앉아만 있고, 혹시나 피해가 되는 건 아닐까. 흥을 깨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말입니다.
아홉시 반 쯤, 촛불 문화제가 끝나고 케익을 자를때(아마 어떤 분의 생일이 었습니다),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아, 뭐하러 그 자리에 두시간이나 앉아 있었나. 귤이나 전해드리고 그냥 갈 걸. 이럴거면 차라리 안오는게 나았을지도. 아아 민망해라 민망해. 피해는 안줬겠지만, 조합원 분들은 '쟤는 뭐니'라고 생각했을거야. 아니, 어쩌면 피해를 줬을지도. 구로로 가는 마을버스에서, 그리고 돌아가는 길의 지하철에서 소심한 나를 탓하며, 그렇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후기를 쓰려고 하니. 참. 정말 단 한 단어도 써내려지지 않았습니다. 아씨, 왜 그러냐, 그냥 쓰면 된다고. 넌 귤 한 봉지 사서 거기 갔고, 뻘줌하게 앉아 있었고, 도망치듯 나왔다고 그냥 쓰면 된다고. 학교 레포트는 술마시고도 쓰면서(결과는 물론 좋지 않지만) 맨 정신에 그걸 못쓰는거냐. 그냥 써. 그런데, 네가 뭘 했다고 쓰냐. 거긴 수십일 동안 천막에서 출퇴근 하시며 농성하시는 분들도 있고, 하루에서 수번씩 마음졸이며 투쟁하시는 조합원 분들도 있다고. 넌 근데 뭘했어. 귤 한봉다리. 하하. 차라리 안가니만 못했던거잖아. 네가 한 건 참여가 아니라 참가, 참가도 아니고 참석, 참석도 아니고 뭣도 아냐.
결국 단 한 줄도 후기를 쓰지 못하고서는 몇일 간 그저 소위 '멍때리고' 있었습니다. 밸리에 글을 올려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게 뭐야. 고작 귤 한 봉다리 주제에 말야"라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습니다. 그곳에 가서 부끄러움을 덜고 싶었지만, 부끄러움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그러다가, 후기가 다 뭐야. 그냥 잠이나 자자며 있었죠.
그러다 김현진 님의 '최상의 연대는 입금이다'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그래, 맞아, 나같이 현장가서 뻘줌하게 서 있는 것 보다야 입금이 낫지. 암 그럼. 그럼 입금을 해볼까, 지금 돈이....없구나. 아, 나는 돈이 없구나. 그래, 그 귀족신분인 '학생'이라서 난 돈이 없구나. 일해서 번 돈 어디로 갔는지 다들 이체되고 남은 돈은 없구나. 놀러다닐 돈은 있고, 입금할 돈은 없는 거였구나. 가진게 몸뚱아리 밖에 없는 나는, 몸으로 부딫혀야 되는데, 그건 싫고, 돈은 없고. 난 무자격자인가. 연대할 자격은 없구나.
지금까지 그런 날들이었습니다. 아직도 용기가 없습니다. 돈도 없습니다. 난 패배자인 것 같습니다. 마음속으로 그 분들이 모두 승리하시기를 바라는 것 밖에 없는 사람이 됐습니다. 그저 블로그에 글질이나 하는 '입글루저'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것 밖에 할 일이 없네요. 그래도 용기를 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남은 것이 입 뿐인 까닭입니다.
부끄럽고, 미안하고 더러울 나 입니다.
(뉴스밸리에 올릴 성격의 글은 아니지만, 그래도 올립니다)
# by | 2008/11/18 09:24 | 떠나간개념을(잡문)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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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그만.
다만, '우리'라는 생각을 버리면 안돼요.
'우리'가 아니다- 연대할 자격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무서운 건, 그런 거에요.
요즘, 도대체 나는 뭐하면서 사는 인간일까...하는 생각에, 마구 써버렸습니다.
그 분들과 제가 '우리'라는 생각은 하고 있어서, 그래서 늘 부끄럽지만,
요즘 도대체 연대란 것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그 자리에 있던 어느 누구도 '쟤는 뭐니'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에요.
오히려 조합원분들 모두 감사하게 생각하고 계실겁니다.
그렇게 비가 오는 날은 사람이 많지 않은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도 월, 목요일 기륭 신사옥 앞에서 문화제가 열리는데 특히 월요일은 조합원분들과 몇 분들 밖에는 함께 하지 못해서 좀 썰렁하답니다.
혹시 시간되시면 한번 오세요.
그리고 문화제 끝나고 뻘쭘하다고 그냥 가시지 마시고 같이 초도 치우고 깔개도 치우고 스피커도 치우다 보면 인사도 하게 되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연대가 뭐 별거 있나요? 그냥 문화제 와서 같이 앉아있는 거, 농성 천막에 와서 걍 앉아있다 가는 거 이게 연대죠 뭐.
우리가 뭐 교섭을 성사시킬 수가 있나요? 최동열이를 교화시킬 수가 있나요? 파견법을 고칠 수가 있나요?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하는 것도, 이렇게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것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거 하면 그게 바로 연대라고 생각해요 저는 ^^